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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국 작가의 현대 추상전이 오는 5월 17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지트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탈출'이라는 대작과 함께 '황금쟁반', '바람소리'., '천년의 기다림' 등의 연작들과 초대형설치작품 '생명의 꽃'을 선보일 예정이다. 오진국 작가가 수십 년간 축적해 온 회화적 사유와 실험의 결정판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진국, 사물의 침묵을 듣는 회화]
오진국 작가의 회화를 두고 단순히 ‘그린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의 작품은 붓과 물감, 캔버스 위에서 조형을 구성하는 전통 회화의 언어를 넘어선다. 그는 재료를 통해 존재를 말하고, 질감을 통해 철학을 건드린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감각적 사유이고, 조형적 시(詩)이며, 물질이 드러내는 존재론적 성찰이다. 오 작가는 유화, 혼합재료, 황토, 천 조각, 금속성 물질 등 비정형의 매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그의 회화는 평면과 입체,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통 회화의 문법을 해체하고 다시 쌓는다. 여기서 ‘쌓는다’는 말은 단순한 중첩이 아니다. 작가가 말하는 ‘겹(Multi-Layer)’은 사물과 감정, 기억, 시간, 공간이 층층이 얽혀 있는 존재론적 두께를 가리킨다. 이는 단지 시각적으로 감각적인 구성이 아니다. 최근 미학 담론에서 떠오른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이나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의 개념들과 맞닿아 있다. 두 철학은 공통적으로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 사물, 환경, 비인간 존재들 또한 고유한 존재론적 지위를 가진다고 본다. 오 작가의 작업은 바로 이들 비인간 객체들—흙, 천, 나무, 섬유, 소리, 흔적, 기억 같은 것들—이 서로 교차하고 감응하는 장이다. 작품 겹(Multi-Layer) 시리즈를 보면 이런 사유가 도드라진다. 겉보기에 텍스처 중심의 회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시간의 퇴적, 기억의 흔적, 감각의 파편들이 중첩돼 있다. 이 층위들은 단순히 ‘붙여진 것’이 아니라 각각 고유한 감응을 지닌 자율적 객체들이다. 작가가 재료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재료 스스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또 다른 물질과 관계를 맺는다. 이 과정은 마치 카렌 바라드(Karen Barad)의 ‘행위-존재(agential realism)’처럼, 주체와 객체, 인간과 비인간, 작가와 재료가 함께 생성하는 세계다. 작품 도시 속의 섬에서도 이런 감각은 이어진다. 섬은 단절의 상징인 동시에, 문명의 질서에서 탈주한 자율적 존재다. 그것은 사회적 내러티브에 포섭되지 못한 채 부유하지만, 그 자체로 독립된 감각과 기억, 침묵을 품고 있다. 오 작가는 이 단절된 존재들이 가진 침묵과 무게를 물성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무게를 존재론적 침묵의 언어로 환기시킨다. 그의 회화는 사물의 침묵을 듣게 하고, 존재의 결을 만지게 한다. 이러한 미학적 태도는 객체지향 존재론에서 말하는 ‘철수(withdrawal)’ 개념과도 겹친다. 철수란, 어떤 사물도 인간에게 온전히 포착될 수 없으며 항상 일부는 감춰진다는 뜻이다. 오 작가의 회화 역시 결코 해석되거나 도식화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의미를 덧씌우기보다 오히려 의미로부터 한 발 물러선다. 그렇기에 그의 회화는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구성하는 비가시적 무대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보면, 오진국의 작품은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의 감각성과 개념미술(Conceptual Art)의 철학성,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물질 실험 정신을 폭넓게 품고 있다. 그의 비구상 이미지와 두꺼운 마티에르는 잭슨 폴락의 정서적 추상성을 연상시키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훨씬 복합적이다. 삼라만상, 도시 속의 섬, 소리명상 연작 등에서 오 작가는 동양 철학, 불교적 사유, 도시의 구조, 생태와 기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존재와 감각을 새롭게 배치한다. 그의 회화는 단순히 시각적 언어가 아니라, 촉각적 감응의 회화다. 거칠게 긁힌 화면, 꺼칠한 천 조각, 반짝이는 금속의 질감, 색이 배어든 섬유 조각은 하나의 조형 언어로 작동한다. 이는 보는 회화를 넘어 ‘감각하는 회화’이며, 관람자의 신체와 정서를 직접 끌어당긴다. 이때 감상자는 단순한 해석자가 아닌 감응의 일부가 된 존재로 편입된다. 그는 또한 도시의 파편적 기호, 무명의 존재들, 흔적들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미의 틈을 드러낸다.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 기호’, ‘해독되지 않은 문양’, ‘구조만 남은 흔적’은 현대 도시의 사유 구조를 은유하면서도, 그 구조의 균열을 드러낸다. 이는 단절과 불확정성에 대한 비관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 가능성의 열림에 가깝다. 오진국 작가의 작업은 미술의 ‘경험’을 물질로 옮겨놓는다. 그는 형상보다 관계, 이미지보다 감응을 말하고 있다. 그가 구축한 회화적 세계는 예술과 철학, 사유와 재료, 인간과 비인간이 복잡하게 얽힌 존재의 생태계다. 이곳에서 예술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미적 행위다. 그의 작품은 미술을 넘어선다. 그것은 철학적 실천이자, 사유의 한 방식이며, 물질이 말을 건네는 하나의 장이다. 오진국의 회화는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물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글,금보성 미술관장/ 교수 <저작권자 ⓒ 한국종합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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